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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여행 둘째날, 오늘의 일정은 유로자전거나라 로마버스투어가 있습니다.

투어 일정이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거라서 호텔 조식시간조식 시간 전에 나가야 합니다. 어제 프런트에 문의하니 조식 시간 이전이지만 간단한 빵과 차를 먹을 수 있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오늘 투어는 대중교통이 아니라 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거라 조금은 편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첫번째 방문지는 '콜로세오(콜로세움)'입니다. 이곳은 별도의 주차장이 없어서 일단 버스에서 내려 콜로세움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서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들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많아 여행하기에는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맑은 날씨라서 따뜻하기도 하지만 기분도 좋습니다.

 

'콜로세오(Colosseum)'는 서기 80년에 베스파시아누스의 명령으로 세운 4층 구조의 타원형 경기장입니다. 정식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으로, 거대하다는 뜻의 '클로살레'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약 55,0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인데 맹수 시합, 검투사 경기, 서커스, 연극 공연 등이 개최되었고, 황제나 귀족은 물론 자유민, 여성, 노예도 이용할 수 있는 문화·스포츠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공연이 끝나면 80여 개의 아치문을 통해 15분이면 5만이 넘는 관객이 모두 빠져나갈 수 있으며, 동물을 입장시키기 위한 엘리베이터, 비와 햇빛을 피하기 위한 개폐형 천막지붕 시설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원형의 1/3 정도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16세기 무렵 르네상스 건축 붐이 일어나면서 로마 귀족들이 이곳의 기둥과 장식을 떼어내서 자신들의 궁전을 장식하는 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콜로세오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종목은 검투사 경기였다고 합니다. 위험한 만큼 보수와 명성이 뒤따랐기 때문에 영화나 소설 등에서와 달리 검투사가 모두 노예 출신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었고, 자유민 출신의 검투사도 많았으며, 코모두스 황제처럼 검투사 경기에 직접 나서는 황제나 귀족도 있었다고 합니다.

 

콜로세오가 잘 보이는 경사로에서의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콜로세오 가까이 다가갑니다. 안타깝지만 내부 관람은 투어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개폐형 천막을 당긴 밧줄을 묶어두는 용도로 사용됐을 거라고 합니다.

 

원래 모습의 1/3 밖에 안 남아있어 일부 보수를 하기도 하는데 일부러 색깔이 다른 재료를 사용해서 원래의 것과 나중에 보수한 부분이 구분되도록 한다고 합니다.

 

콜로세오 서쪽에는 '팔라티노 언덕'이 이어집니다. 어젯밤에 잠깐 구경했던 포로 로마노가 이어지는 곳입니다.

 

자유여행이라면 통합권을 구입해서 팔라티노 언덕과 콜로세오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구경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제 조금 서둘렀으면 콜로세오 내부 관람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콜로세오 바로 앞에는 커다란 3개의 아치가 있는 '콘스탄티노 개선문'이 있습니다. 로마에서 가장 큰 개선문(높이 21m, 너비 25m)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315년에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19세기에 나폴레옹에 의해 이 개선문이 파리로 옮겨질 뻔했지만 다행히 기술적인 문제로 실행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개선문을 본떠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과 루브르 박물관 앞의 카루젤 개선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가이드님이 알려준 이 장소가 개선문과 콜로세오가 같이 나오는 인증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콜로세오 실외 관람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로마 외곽으로 나가면서 창 밖으로 본 곳은 '대전차 경기장'입니다. 움푹 파인 타원형 공간이 고대 로마제국에서 가장 큰 대전차 경기장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사실을 모르고 본다면 용도를 알아보기 어려운 곳이 될 것 같습니다.

 

로마에서도 출퇴근 시간이 되면 도로가 많이 막히기 때문에 일정을 변경해서 막히지 않는 시간대에 외곽을 먼저 구경한다고 합니다.


다음에 방문한 곳은 '도미틸라 카타콤베'입니다.

 

'도미틸라 카타콤베(Domitilla's Catacombs)'는 '기독교인들의 지하 공동묘지'를 뜻한다고 합니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좁은 길을 따라 좌우에 작은 공간이 층층이 들어서 있는데, 작은 것은 어린이 무덤이고, 넓은 공간은 가족묘지입니다. 여러 무덤들 중에서 석관에 안치된 것은 일부 부유층의 무덤이고, 일반적으로는 관 없이 헝겊으로 감은 후 올리브 오일을 바른 채 안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은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절에는 복잡한 내부 구조 때문에 신자들의 은밀한 예배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무덤 안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카타콤베를 구경한 후 로마 수도교로 이동하는 동안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도로를 지나게 됩니다. 로마와 점령지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었던 직선도로인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총 길이가 28만 km에 이르는 모든 길이 로마와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방문한 곳은 '수도교'입니다. 외곽에 위치해서 그런지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우리 말고는 다른 방문객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도교 앞까지 들어가는 길이 좁아서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고 짧은 거리를 걸어가야 합니다.

 

수도교 앞에는 골프장 같기도 하고, 아님 다른 종류의 스포츠 경기장으로 보이는, 잘 관리되지 않는 잔디밭 비슷한 곳이 보입니다.

 

'로마 수도교'는 짧게는 23km, 길게는 98km 외곽에서 물을 끌고와 수로를 통해 목적지까지 운반될 수 있도록 지탱하던 건축물입니다. 기원후 1세기 중반 건설된 클라우디오 황제의 수도교가 현재 남아있는 로마 시내의 수도교 중에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고, 고대 로마 건축물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라고 합니다. 
스페인의 세고비아에서 봤던 로마 수도교는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지만 정작 로마에서의 수도교는 그것에 비하면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길게 남아 있어 기다란 성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곳도 콜로세움처럼 원래 있던 수도교와 나중에 복원한 부분으로 보이는 곳은 사용된 재료가 달라 보입니다.

 

투어에 참가한 많은 분들이 사진 찍느라 처음에 도착한 곳 가까운 곳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어서 사진은 뒤로 미루고 조금 더 걸어가 봅니다.

 

가장 윗쪽의 자갈이 많이 보이는 부분의 안쪽이 터널식으로 되어 있어 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파괴었지만 복원하지 않는 곳도 많네요.

 

수도교 반대편에는 공원처럼 넓은 풀밭(?)이 있습니다.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분들이 다니시던데 그렇게 때문에 말이나 개 등의 배설물을 주의하면서 걸어야 합니다.

 

사이클을 타고 이곳을 지나가는 분들이 계시네요.

 

이제 사진 찍는 건 다 끝났나 봅니다.

 

조금 떨어진 다른 곳에도 수도교의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저쪽편에 있는 수도교는 많이 파괴되어 있는데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나 봅니다. 기둥 모양의 윗부분에 네모나게 뚫려 있는 곳이 물이 지나는 통로입니다.

 

아주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시고 투어 참가자를 챙겨주시는 친절하신 가이드님이 마지막으로 우리 사진을 찍어 주시고는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바울 참수터'입니다.

 

입구에는 침묵을 표현하고 있는 성 베네딕트의 동상이 있습니다. 성 베네딕트 동상이 있는 까닭은 이곳 성지와 성지 내에 있는 교회, 수도원이 626년부터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치문으로 들어와서 오른편에 있는 건물은 사도 바울의 감옥 위에 세워진 '천국의 계단 성당(Scala Coeli)'입니다. 1138년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이 이곳에서 기도하던 중 자유로운 영혼이 연옥으로부터 계단을 타고 천국에 오르는 환상을 본 것으로부터 이 성당이 '천국의 계단 성당(Scala Coeli)'이라고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오른쪽 창문이 있는 방이 사도 바울이 참수되기 전까지 머물렀던 감옥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바오로 성인의 참수터(Tre Fontane)'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한분은 아니었으나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 가장 큰 활약은 한 분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터키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바리세인들의 지도자가 되었고,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 대한 박해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현재 시리아 다마스커스로 그리스도 교인들을 잡으러 가던 중 부활한 예수를 만나 그 자리에서 개종하였으며, 그후 13년 동안 자숙의 시간을 통해 준비를 마친 후 선교활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로마 시민권자이면서 국제적으로 통용했던 그리스어에 능통하여 2만 킬로미터가 넘는 3번의 전도여행을 통해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파하였으며,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을 기록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리더였다고 합니다. 67년 네로 황제 때 기독교 박해 시기에 지하감옥에 있다가 이곳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게 됩니다.

 

두팔을 벌리고 서 있는 이 분은 '성 베르나르도'라고 하네요.

 

바울 참수터까지 보고 난 후 버스를 타고 로마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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