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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구경을 서장대까지 한 다음 화성행궁으로 내려왔습니다. 화성행궁을 구경하기 전에 바로 앞에 있는 '수원화성홍보관'을 먼저 구경했습니다. 수원화성홍보관은 화성과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와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습니다.

1층에는 수원의 역사와 문화, 관광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놓은 '홍보실'과 기념품점이 있습니다.

 


2층에는 화성축성에 대한 설명과 주요 인물들을 설명하고 있는 '축성실'과 일제강점기 이후 훼손되었던 화성과 화성행궁이 복원되는 과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층 야외에는 편안하게 앉아서 쉬거나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휴게실과 카페테리아가 있습니다.

 


지하1층에는 '기획전시실'과 '3D 영상실'이 있는데 3D 영상실은 수리로 인하여 상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화성행궁 광장에 있는 이정표인데 너무 먼 곳의 거리(북극점, 런던, 파리, 뉴욕, 상하이 등)를 나타내고 있어서 별다른 감흥은 없습니다만 사진 포인트로는 눈길을 끕니다.



화성행궁 주차장 입구에서 바라본 서장대의 모습인데 역광이라 사진찍기가 쉽지 않습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으며, 1790년에서 1795년(정조 14∼19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고 합니다.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화성부 유수(留守)가 집무하는 내아(內衙)로도 활용하였다고 합니다.
정조는 1789년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 이후 이듬해 2월부터 1800년(정조 24년)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陵幸)을 거행하였는데, 이때마다 정조는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고 합니다. 화성행궁은 성곽과 더불어 단순한 건축 조형물이 아니라, 개혁적인 계몽군주 정조가 지향하던 왕권강화정책의 상징물로 정치적, 군사적인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 화성화성 웹사이트에서 옮김

 

화성행궁은 수원화성과 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합니다.(성인 1,500원, 어린이 700원) 그리고 스탬프찍기 등의 체험활동을 위한 종이 등을 같이 판매하고 있습니다. 3월부터 11월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오후 2시에 토요상설공연이,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는 '장용영수위의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3월 12월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에는 '무예24기공연'이 있습니다.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의 모습입니다. 처음 이름은 '진남루(鎭南樓)'라고 하였는데 정조가 '신풍루'로 고치라고 명하였다고 합니다. '신풍'이란 이름은 한나라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 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에게 있어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신풍루를 지나서 뒤를 돌아보면 역광의 정 반대편이라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신풍루를 지나면 '좌익문(左翊門)'이 나옵니다. 좌익문은 중앙문 앞에 있는데, '좌익은 곧 곁에서 돕는다'는 뜻으로 '내삼문(內三門)'인 중앙문을 바로 앞에서 도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中三門)'이라고 합니다.

 


좌익문을 지나서 뒷편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좌익문을 지나면 '중앙문(中央門)'이 나옵니다. 중앙문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이라고 합니다. 추석연휴기간이라서인지 여러가지 체험마당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중앙문을 지나면 '봉수당(奉壽堂)'이 나옵니다. 봉수당은 화성 행궁의 정전(正殿)건물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 합니다. 1795년(정조 19) 정조는 혜경궁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정조는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조윤형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였다고 합니다. 역시 역광상태라 정면에서 찍지 못하고 측면에 빗겨 서서 촬영했습니다.

 


봉수당 중앙에서 바라본 행궁 입구쪽 모습입니다.

 


봉수당 왼쪽 뒷편으로 '장락당(長樂堂)'이 있습니다. 장락당은 1795년 을묘원행 중 혜경궁의 침전으로서 1794년(정조 18) 화성 성역 중에 완성되었으며, 봉수당 남쪽에 있는데 봉수당의 서남쪽 지붕과 겹쳐 있으며, 동향으로 세워졌습니다.

 


장락당 뒷편으로는 이리저리 구경을 다녀봅니다.

 

 

봉수당 오른쪽 뒷편으로 걸어나가면 '낙남헌(洛南軒)'이 있습니다. '낙남헌'이란 이름은 후한의 광무제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궁궐 이름을 '남궁(南宮)'이라 한 것에서 따온 것으로, 1794년(정조 18)에 관공되었다고 합니다. 1795년(정조 19) 을묘원행시에는 각종 행사가 이 곳 낙남헌에서 치러졌다고 합니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군사들의 회식을 이곳에서 하였으며, 특별과거시험을 치러 문과 5명과 무과 56명을 선발 하였는데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 주는 행사도 이곳에서 있었다고 합니다.

 


'노래당(老來堂)'은 낙남헌과 이어져 있는 건물입니다.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수원에서의 노후생할을 꿈꾸며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행궁 뒷편으로는 '내포사'와 '미로한정'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포기하고 다시 중앙문 앞으로 걸어 갔습니다.



중앙문 왼편에 있는 '유여택(維與宅)'과 '외정리소(外整理所)', '비장청(裨將廳)', '서리청(西吏廳)' 등을 구경한 다음 행궁구경을 짧게 마치고 나왔습니다.

 


화성 구경을 화성행궁에서부터 시작했다면 좀 더 자세히 보고 구경했을 텐데 이미 많이 걸어다녔고, 주차장까지 다시 걸어가야할 상태라 조금은 일찍 구경을 마쳤습니다. 나중에 안내팜플렛을 보니 화성행궁 바로 옆에 정조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도 있었는데 미처 들를 생각도 못 했습니다.

화성행궁 구경을 마치고 차를 세워 놓은 연무대 주차장으로 걸어가다 '수원화성박물관'에 잠시 들렀습니다.

 

☞ 수원화성박물관 웹사이트 : http://museum.suwon.ne.kr

 

수원역사박물관은 수원의 화성을 찾는 방문객에게 정조시대의 문화와 더불어 화성의 우수성을 심도있게 알려주는 전문박물관이라고 합니다. 전시공간은 화성의 축성과정을 알려주는 '화성축성실', 화성의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는 '화성문화실', 수원화성과 관련된 야외 전시공간 등 크게 세곳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추석연휴라서인지 국악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많이 걷느라좀 지쳐있는 상태라 앉아 쉬면서 구경했습니다. 이전에 다른 많은 공연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가 본 건 풍물공연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박물관 내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구경만 했습니다. 2층과 3층 야외에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2층 야외전망대에서 빛이 너무 좋길래 아내에게 먼 곳을 바라보는 포즈를 취해보라 했는데 만족할만한(?) 사진이 나왔습니다.

 


3층 야외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저 멀리 봉수대가 보입니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보니 어린이 체험실이 있었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체험해보는 건데 이미 오후 5시가 넘어서 운영이 종료되어 체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여름내 무더웠던 날씨가 이제는 많이 선선해져서 걸어다니며 구경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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