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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울] 덕수궁(德壽宮)

한감자 2017. 11. 27. 22:25

단풍 구경하기에는 이미 많은 날이 지나버린 늦은 가을, 둘째가 다니는 서울에 있는 미술학원에서 작품 전시회가 오후에 있다고 하여 관람시간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 덕수궁을 구경했습니다. 때마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과 10권을 읽고 있는 중이라 책에서 읽은 내용을 눈으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 덕수궁 웹사이트 : http://www.deoksugung.go.kr

☞ 예전에 다녀왔던 글 : http://hangamja.tistory.com/151

 

지하철역에서 나와 입장권을 구입하려고 하니 때마침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단 입장권을 구입하고난 후 수문장 교대식을 보고 들어갑니다. 

 

 

대한문 앞이 경복궁만큼 넓은 공간이 아니어서 어떻게 진행되려나 궁금했는데 공간에 맞춰서 잘 진해하네요. 아무튼 넓지 않아서 구경하는 것도 조금 불편하지만 잘 봤습니다. 일반인도 신청을 해서 복식을 갖춰 입고 함께 참여하는 행사가 있네요. 수문장 교대의식이 끝나면 수문군과 함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네요.

 

 

수문장 교대의식이 끝나고 덕수궁 안으로 들어서니 이미 많은 관람객들이 입장해 있습니다.

 

 

그나마 관람객들이 적어 보이는 오른쪽부터 구경을 시작했습니다.

덕수궁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서울에 있는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선조 26년(1593년)부터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다 광해 3년(1611년) 정릉동 행궁이라 불리던 걸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붙여 주었습니다. 그후 광해 7년(1615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겨가면서 경운궁은 별궁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중화전이 있는 정면쪽보다는 함녕전이 있는 쪽이 많이 한산합니다.

 

 

함녕전 옆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함녕전(咸寧殿)'은 1897년에 건립된 왕의 침전입니다.

 

 

고종이 이곳에서 기거하다가 68세를 일기로 승하하였고, 고종의 빈전 및 혼전으로 상용되었다고 합니다.

 

 

함녕전 옆에 있는 '덕홍전(德弘殿)'은 고종황제가 고위 관료와 외교사절을 맞이하는 접견실로 사용되었으며, 내부는 천장의 샹들리에와 봉황 문양의 단천, 창방의 오얏문양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졌다고 합니다.

 

 

함녕전과 덕홍전 뒷편으로 정관헌이 보입니다.

 

 

덕홍전 너머로는 석어당이 보입니다.

 

 

일단 가까운 정관헌부터 관람을 이어갑니다.

 

 

'조용히 궁궐을 내려다본다'는 의미를 가진 '정관헌(靜觀軒)'은 1900년경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이 한식과 양식을 절충해 설계한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우와~, 단풍나무가 아주 예쁘게 물들었습니다.

 

 

고종황제는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시며 외교사절들과 연회를 즐겼다고 합니다.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으면 정관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정관헌 바깥에는 동·남·서 세 방향에 기둥을 세운 베란다가 있는데 지금 이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단풍이 아주 예쁩니다.

 

 

정관헌 구경을 마치고 석조전이 있는 곳까지는 단풍이 예쁘게 남아 있는 산책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보기 괜찮은 정도의 단풍은 되는 것 같습니다.

 

 

'석조전(石造殿)'은 고종황제의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서양식 석조건물입니다. 대한제국 근대화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건립한 서양식 건축물인데, 건물의 앞과 동서 양면에 베란다가 설치된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1층은 시종이 기거하는 방과 부속시설, 2층은 접견실과 대기실로, 3층은 황제와 황후가 거처하는 침실과 여러 용도의 방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고종황제 승하 후에 일본 회화미술관으로 사용되었으며, 1938년에 서쪽에 별관이 들어서서 이왕가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궁궐에서는 만날 수 없는 서양식 건물입니다.

 

 

석조전 계단 위에서 보는 궁궐 건물과 빌딩들이 함께 보이는 풍경도 괜찮네요......

 

 

석조전 가까이에 있는 '준명당(浚明堂)'은 황제가 업무를 보던 편전인데, 즉도당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준명당과 연결된 즉조당 옆에 있는 2층 건물은 '석어당(昔御堂)'입니다.

 

 

단청을 칠하지 않아 소박함이 느껴지는듯 한데 임진왜란 때 선조가 임시로 거쳐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후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가 10여년간 감금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며, 인조반정이 성공한 후 인목대비가 석어당 앞마당에 광해군을 꿇어 앉히고 36조의 죄를 물은 후 능양군에세 옥새를 전달했다 합니다.

 

 

석어당에서 덕흥전으로 넘어가는 담장 가운데는 '현명함을 생각하는 문'이라는 뜻의 '유현문(惟賢門)'이 있습니다.

 

 

다시 석조전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석조전 앞의 정원과 청동제 분수는 1938년에 조성된 것인데, 우리 전통 조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설이라고 합니다. 보통 우리의 전통 정원은 건물의 뒤에 배치하여 후원이라고 하는데 비해 석조전은 건물 앞에 정원을 조성하였고, 우리 조상들은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했는데 물이 역으로 치솟는 분수는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중화전(中和殿)'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입니다. 고종이 덕수궁으로 환어한 이후 5년 정도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다가 1902년 중화전을 지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중층 선물이었지만 1904년 대화재로 소실된 후 1906년에 재건하면서 어지러운 시국과 궁핍한 재정상황으로 인해 단층으로 축소되었다고 합니다.

 

 

중화전은 이중 월대 위에 올린 건물인데 계단 답도에는 조선 궁궐의 정전 중에서 유일하게 용 두마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다른 궁궐 정전에는 봉황이 새겨져 있지만 대한제국 출범 후 지어진 건물이라 황제를 상징하는 용을 장식한 것이라고 합니다.

 

 

광명문 안에는 국보 제229호인 자격루가 있습니다.

 

 

덕수궁의 원해 이름은 경운궁입니다. 광해군 3년(1611년)부터 헤이그 밀사 파견으로 고종이 강제로 양위될 때(1907년)까지 300여년 동안 경운궁으로 궁호가 사용되었으나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에게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궁호를 올린 것이 그대로 궁궐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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