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알람브라 궁전 관람권을 인터넷으로 예매할 때 입장 티켓의 종류를 먼저 결정해야 하고, 일반 티켓일 경우 그다음으로는 입장 시간대를 오전과 오후 중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고 난 뒤에도 한번 더 시간을 정해야 하는 것이 나스르 궁전 입장시간입니다.

알카사바와 카를로스 5세 궁전을 추위에 떨며 구경한 다음 파라도르 안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차를 마시며 몸을 잠시 녹인 후 시간에 맞춰 나스르 궁전 입장하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우리나라 겨울 날씨보다는 기온이 높지만 바람이 불어와 체감온도는 생각보다 많이 낮아 춥습니다.

 

저 건너편이 알람브라 궁전 야경을 많이 보러 가는 알바이신 지구인가 봅니다.

 

이제 시간이 되어 입구에서 티켓에 적힌 입장시간을 확인하고 나스르 궁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입장하는 곳 왼편으로 보이는 곳은 '마추카 중정'으로, 스페인의 화가이자 건축가로 카를로스 5세 궁전을 설계했던 '페드로 마추카'의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알람브라 궁전 초입에서도 만났던 모습입니다만 나무를 참 반듯하게도(?) 깎아놨습니다.

 

나스르 궁전에서 제일 먼저 입장하는 곳은 '메수아르(Mexuar)의 방'(혹은 '궁')입니다.

 

이스마일 1세(1314~1325년) 때 처음 만들어진 이곳은 원래 2층으로 된 방이었으며, 왕이 신하들을 만나 국정을 의논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코마레스 궁과 사자의 궁이 건설된 후에는 그곳으로 역할을 넘겨주고는 주로 왕이 백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정의의 문'에서 간단하게 판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재판하는 곳으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이슬람 왕조가 무너진 뒤에는 기독교들에 의해 예배당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중앙을 가로지르는 나무로 된 난간은 예배할 때 성가대가 노래하던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나스르 궁전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등에 짊어지고 있는 배낭을 앞으로 매야 합니다.

 

이슬람에서는 우상숭배가 금지되어 있어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을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문장이나 식물, 기하학적인 무늬를 장식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그 섬세함이 대단합니다.

 

벽면 장식은 '회벽 세공(Stucco)'이라고 불리는데, 건축용 마감재료를 석회에 대리석 가루와 점토 가루 등을 섞어 물에 반죽한 다음 굳혀 단단해진 것으로 벽면을 장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는 주로 벽면이나 아치 윗부분을 장식하는데 쓰였는데, 벽면에 석고를 바른 다음 그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밑그림을 따라 음각한 다음, 음각된 부분을 채색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나 색이 바랬지만 색깔이 남아 있을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화려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도 아주 훌륭합니다.

 

오늘날처럼 기계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나타낼 수 있다니 그 재주와 노력에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메스아르 방을 나가기 전에 북쪽에 있는 작은 방이 있는데 그곳은 '기도실'입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알바이신 지구의 풍경을 보느라 이곳 벽면의 아름답고 정교한 세공을 지나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기도실을 북쪽으로 배치한 까닭은 메카(Mecca)가 있는 방향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도실 입구 오른쪽에는 메카의 방향을 향해 벽면을 오묵하게 만든 공간인 '미흐랍'이 있습니다. 서양 건축에서는 인물상 등의 장식물을 이곳에 배치하는데, 이슬람 사원에서는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교리에 따라 이곳에 구체적인 형상을 갖춘 물건을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예배실에서 가장 중요하고 신성한 공간이라 주변 장식에 많은 정성을 들인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본다고 해도 이곳의 벽면은 대단하다는 감탄이 끊이지 않게 만듭니다.
메수아르 궁의 기도실을 보고 난 뒤 작은 아치문을 나서면 '황금의 방'이 있습니다. 황금의 방은 왕의 집무실이었는데, 방의 목재 장식에 황금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목재 천장의 조각이 정밀하면서도 화려하기 때문에 황금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나스르 궁의 중앙 정원인 아라야네스 중정으로 이어지는 곳에 벽감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술탄의 공간에 허락받지 못한 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경호원이 있는 자리라고 합니다.

 

벽감 오른쪽으로 난 아치문을 나서면 나스르 궁전의 대표적인 장면을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은 '아라야네스 중정'입니다. 물을 중시하는 이슬람교도들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곳이 건물의 중앙정원에는 연못이나 분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볼 수 있는 중정들은 일정한 유형을 갖추고 있는데, 사각형의 뜰 한가운데 직사각형의 연못이 있고, 직사각형의 양쪽 끝에는 기둥을 받치는 아치가 있고, 사방에 방이 배치되는 구조라고 합니다.

 

연못과 분수는 장식용으로도 훌륭하지만 주변의 방으로 흘러들어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중정의 남쪽에 있는 건물은 술탄의 사적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뒤로 보이는 카를로스 5세 궁전이 지붕 뒤로 겹쳐 보이기 때문에 완벽한 대칭구조가 살짝 어긋나 보입니다.

 

연못 주변에는 '아라야네스'라는 이름의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아랍어로 '향기롭다', '천국의 꽃나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중정의 북쪽에는 일곱개의 아치 너머로 커다란 탑이 하나 솟아 있는데, 그 탑을 '코마레스의 탑'이라고 합니다. 이곳이 이슬람 왕조의 국정이 이루어지던 핵심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연못에 반영되는 모습이 정말 멋질 텐데 안타깝게도 오늘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정의 동쪽과 서쪽에 있는 2층으로 된 건물은 술탄의 부인들이 사용하던 곳으로 여름에는 아래층을, 겨울에는 위층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코마레스 탑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벽감이 있는데 이곳의 타일장식도 꽤나 아름답습니다.

 

아치문의 안쪽까지 이렇게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을 만들어 놓다니......

 

완벽한 대칭구조를 많이 만납니다.

 

코마레스 궁전의 동쪽에 있는 '사자의 궁'이 완공되면서 왕실 가족들의 생활공간이 코마레스 궁전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사자의 궁전은 알람브라 궁전에 남아 있는 세개의 궁전(메수아르 궁, 코마레스 궁, 사자의 궁) 중에서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면서도 보존 상태가 좋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보수공사 중이라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중앙에 열두마리의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분수가 있습니다. '사자의 중정'이란 이름은 이 사자 분수 때문에 붙여진 것이겠지요. 이 분수는 시간에 따라 다른 사자의 입에서 물이 흘러나와 물시계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알람브라 궁전 안에 있는 다른 중정에서는 중앙에 연못이 있지만 이곳에는 연못을 대신하는 분수가 있습니다. 사자의 위쪽 중앙에 있는 수반에 물이 담겨 있고, 그 물이 사자의 입을 통해서 뿜어져 나오는데, 여기에서 흘러나온 물이 중정을 둘러싼 네개의 방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수로로 흘러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래 설치되어 있던 사자상은 물에 많이 포함된 석회 때문에 배출구가 막혀 카를로스 5세 궁전의 박물관에 옮겨져 보관 중이고, 현재는 복제된 제품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마저도 보수공사 때문인지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교리에 따라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그리거나 새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알람브라 궁전 안에 사자 형상의 분수대가 놓은 것은 의외의 일입니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 당시 그라나다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열두부족장이 나스르 왕조의 술탄에게 우호의 증표로 보낸 선물이었을 거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교리에는 어긋나지만 두 종족 사이의 평화를 지켜려는 의도에서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고 합니다.

 

사자의 분수가 있는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12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아치웨이와 벽면의 정교함과 아름다운 장식도 대단합니다.

 

사자의 중정 남쪽에 있는 방은 '아벤세라헤스의 방'입니다. 술탄이 이 방에서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젊은이 36명을 참살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알람브라 궁전 안에 있는 국영 호텔인 파라도르 데 그라나타 근처에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집터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 8개의 꼭지점을 가진 별 모양의 아름다운 천장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면마다 두개의 창문이 배치되어 있어 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환상적인 조명 효과를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이 8각의 별모양 천장과 사각의 벽을 잇는 공간은 '무카르나스 양식'으로 장식을 했습니다. '무카르나스 양식'은 '모카라베 양식'이라고도 하는데 작은 벽감들을 중첩하여 장식하는 기법을 말하는데, 종유석이 가득한 동굴을 연상시키는 3차원 장식이라고 합니다.

 

사각기둥으로부터 8각 천장까지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천장을 보고 있으니 고개가 아픈 줄도 모르고 감탄을 계속하게 됩니다.

 

사자의 중정을 기준으로 주변의 여러 방을 구경하다 보니 동서남북을 구분하는 방향 감각을 잊어버리고 아름다운 벽과 천장의 장식에 집중하게 됩니다.

 

다른 자료들을 보면 중앙에 있는 사자 분수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공사 때문인지 복도를 벗어나서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습니다.

 

'왕의 방'은 아름다운 사각형 천장이 있는 개방형 방입니다.

 

왕의 방에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 무수히 많은 작은 벽감들이 겹겹이 쌓인 '무카르나스 양식'의 천장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봤던 아벤세라헤스의 방의 천장과는 다른 형태지만 아름다운 천장이라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사자의 중정에서 북쪽에 있는 방이 '두 자매의 방'입니다.

 

왕의 총애를 받던 두 후궁이 자매처럼 사이좋게 지내면서 붙은 이름이라는 이야기와 이 방 가운데 놓인 거다란 대리석 두 장을 의인화하여 부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자매의 방의 천장을 보면 아벤세라헤스 방의 천장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벤세라헤스 방의 천장은 8각 별 모양인데 비해 두 자매의 방 천장은 팔각형의 도형이고, 창문의 배치도 다릅니다. 하지만 역시나 넋을 잃고 계속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할 만큼의 아름다움은 둘 다 똑같습니다.

 

두 자매의 방 북쪽으로 아담한 정원이 보이는 공간이 있는데, 이곳은 '린다하라 전망대'입니다. 원래는 중정과 더불어 알바이신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카를로스 5세의 방과 왕비의 규방을 연결하는 회랑이 들어서는 바람에 시야가 가려져 버렸습니다.
낮은 창문 주위의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무늬와 정교한 무카르나스 장식이 새겨져 있고, 벽면 하단에는 채색 타일 아줄레호가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어 알람브라 궁전의 멋진 장식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자의 궁에 있는 두 자매의 방에서 카를로스 5세의 방쪽으로 가다 보면 창문 밖으로 왕의 목욕탕 지붕이 보입니다.

 

린다하라 전망대 너머로 보이던 아담한 정원은 '린다하라 중정'입니다. 지금까지 봤던 화려한 벽이나 기둥 등의 장식이 배재된 정원으로, 이슬람식이라기보다는 기독교식 정원의 형태라고 합니다.

 

알람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서 그라나다를 방문하고, 나스르 궁전을 보기 위해 알람브라 궁전을 방문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스르 궁전은 알람브라 궁전 안에서도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만한 곳입니다. 또한 '그라나다에서 앞을 못 보는 것보다 더 가혹한 벌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궁전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