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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동쪽으로는 왕이 평상시 업무를 보던 편전인 '선정전(宣政殿)이 있습니다.

'선정'이란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는 뜻으로, 이 곳에서 임금은 신하와 국사를 의논하고, 학문을 토론하며, 사신을 만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선정전(宣政殿)'은 창덕궁에 남은 유일한 청기와 건물입니다.

청기와는 아라비아의 푸른 안료와 중국의 기술을 이용한 비싼 건축재료라고 합니다.

 




편전 안을 들여다 볼 때마다 '두터운 마루바닥일 텐데 어떻게 온돌로 난방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담장과 그 너머로 보이는 기와 지붕의 모습은 언제 봐도 보기 좋습니다.

 




선정전을 보고 나오면 바로 동쪽에 '희정당(熙政堂)'이 있습니다.

희정당은임금의 집무 공간으로, 임금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간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희정당은 1920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동궐도에 따르면 오래전 희정당 마당에는 '하월지'라는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때마침 희정당이 공사중이어서 안을 구경할 수는 없었습니다.

옆으로 돌아서 걷다보니 어느새 '대조전' 영역으로 들어 섰습니다.

 


대조전 동쪽 담장과 북쪽 담장에는 꽃계단을 만들어 놨습니다.

재작년 꽃이 남아 있던 비오는 봄에 왔을 때 봤던 꽃계단의 모습은 지금처럼 휑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대조전의 서쪽에 수라간이 있는데 흰색 타일과 유리창문, 서양식 오븐, 수도시설 등 현대식 부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조전 영역을 한바퀴 돌아서야 중심 건물인 '대조전(大造殿)'을 만났습니다.

대조전은 임금의 처소인 희정당 뒷편에 자리 잡은 곳으로 임금과 왕비의 침전입니다.

'대조(大造)'란 '큰 공을 이룬다'는 뜻으로, 왕자의 생산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대조전 앞 월대 네 귀퉁이에 드므가 자리잡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그 옆으로 전등이 있습니다.

대조전에는 전등 뿐만 아니라 유리문, 온돌 대신 쪽마루가 깔려 있는데, 이는 1917년 일제 강점기에 화재로 불타버리자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다 서양식으로 다시 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창경궁의 통명전은 그 안에 들어가볼 수 있었는데 이 곳은 그렇지 않네요.

 






선정전의 지붕이 청기와인 것은 희정당 앞마당에서 봐야 더 잘 보입니다.

 




희정당 동쪽에는 세자의 영역인 동궁에 해당하는 '성정각(誠正閣)'이 있습니다.

세자는 이 곳에서 하루 세차례 유교 경전 수업을 받고, 예법, 악기 연주, 활쏘기, 말타기, 붓글씨, 셈하기 등 여섯가지 과목을 배웠는데, 학습한 내용을 정기적으로 평가하여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임금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성정각 뒷편으로 '집희(緝熙)'라는 현판이 달려있는 건물이 있는데, 고종 임금이 열세살에 쓴 것으로 '임금의 밝은 덕이 계속하여 빛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곳은 임금과 세자의 공부방으로 사용되었는데 정조 임금이 특별히 애용했다고 합니다.

 




성정각 옆으로는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습니다만 겨울이라 후원관람은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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