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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

한감자 2012. 2. 21. 18:54

'병산서원(屛山書院)'은 본래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을 1572년(선조 5년)에 류성룡(柳成龍) 선생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18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보호되었다고 합니다.

 

☞ 병산서원 웹사이트 : http://www.byeongsan.net

 


서원의 입구 양쪽으로 배롱나무가 잘 심어져 있으며, 참 잘 정돈된 곳이라는 느낌을 주는 서원입니다.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復禮門)'입니다.

보통 서원의 정문은 삼문(三門)이 일반적인데 비해 병산서원은 가운데 칸만 있고 좌우로는 담장으로 구분되는 벽채를 한칸씩 두고 있습니다.

 


복례문을 들어서기 전에 뒤를 돌아다보면 앞으로 펼쳐진 풍경이 꽤나 보기 좋습니다.

 



복례문을 지나면 병산서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만대루(晩對樓)'가 있습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지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이라고 합니다.

'만대(晩對)'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의 한 구절인 '취병의만대 백곡회심유(翠屛宜晩對 白谷會深遊 :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수는 늦을 녘 마주 대할만 하고, 흰 바위 골짜기는 여럿 모여 그윽히 즐기기 좋구나)'에서 따온 말이라고 합니다.

 



부석사의 안양루처럼 그 밑을 지나야 다음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200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만대루를 지나면 서원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인 '입교당(立敎堂)'이 나옵니다.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인데, 원래의 명칭은 '숭교당(崇敎堂)'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입교당과 만대루 사이의 마당을 가운데로 하고 동쪽과 서쪽으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마주하고 있습니다.

'좌고우저(左高右低)'의 원리를 따라 동재에는 상급생들이, 서재에는 하급생들이 기거하였다고 합니다.

 





 







입교당 후면 왼쪽으로는 책을 인쇄할 때 쓰이는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 있고, 그 앞에는 아주 오랜 배롱나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입교당 뒤로는향사(享祀) 때에 제관(祭官)들이 출입하는 신문(神門)이 있습니다.



정면 3칸의 솟을삼문으로 붉은 색칠을 하여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고 있습니다.

 


입교당 후면 오른쪽으로는 사당에 올릴 제수를 준비하는 곳인 '전사청(典祀廳)'이있습니다.

 


그 밖에 만대루와 복례문 사이에 '광영지(光影池)'라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흙으로 메꿔놓아서 그 형태만 남아 있습니다.

 



서원 앞으로 더 걸어가면 예천 회룡포에서 봤던 것 만큼이나 아주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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