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기도

[여주] 신륵사(神勒寺)

한감자 2018. 9. 3. 10:19

여주 '신륵사(神勒寺)'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합니다. 그 밖에도 고려 우왕 때 나옹선사와 관련된 전설도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영릉을 여주로 천장한 1469년부터 조선 왕실에서 신륵사를 원찰로 중수하고, 성종, 현종, 영조, 철종 때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 신륵사 웹사이트 : http://www.silleuksa.org
☞ 예전에 다녀온 글 : http://hangamja.tistory.com/76

 

신륵사 입구에 '여주도자세상'이 있어 같이 관람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여러번 다녀왔던 곳이고, 관람시간에 그리 여유가 많지 않아 지나쳤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 앞으로 가면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커다란 일주문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여행할 때마다 문화재 관람을 위해 사찰을 많이 들르는 편인데 새로 만들어지는 일주문의 모습들이 지금 보는 모습과 비슷해지는 것 같습니다......

 

 

더위가 많이 지나간 선선한 일요일 오후라 걸어다니며 구경하기에 좋은 날씨인데 방문객들은 별로 안 보입니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천왕문이 아닌 '불이문(不二門)'이 나옵니다. 일주문→(금강문)→천왕문 등의 순서로 사찰 안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좀 다른 구조입니다.

 

 

'불이문(不二門)'은 사찰에 있는 여러 문 중에서 본당에 들어가는 마지막 문이라고 합니다.

 

 

이 문을 통과해야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이제부터는 살아서 불국토를 구경하는 겁니다.

 

 

불이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보제루'가 있습니다. 다른 절에서는 사찰의 중심으로 이동하다 보제루를 만나거나 지나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주경로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어 사찰 건물이라기 보다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옛 정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멋지게 잘 자란 나무 사이로 경내 여러 건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극락보전 앞에 '구룡루(九龍樓)'라는 누각이 있는데 신륵사의 창건설화에 나타나는 용마(龍馬)와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보통 사찰에서 2층의 누각 건물은 아래 부분이 트여있어 사람이 통과할 만큼 높이에 여유가 있지만 여기는 기단이 낮아 사람이 걸어서 통과하기에는 좀 어려워 보입니다.

 

 

건물 옆으로 지나 뒤돌아 보면 뒷쪽에서는 바로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천년사찰이라 수령이 오래된 멋진 나무들이 많습니다.

 

 

대략 수령이 600년쯤 됐다는 은행나무인데, 가지 사이에 관세음보살처럼 보이는 신기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실 이런 설명을 보먼저 읽고난 다음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긴 합니다......

 

 

은행나무 옆에 오래되어 보이는 비각이 있길래 이건 뭘까 싶어 살펴보니 공덕비네요......

 

 

'극락보전(極樂寶殿)'은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신 전각입니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으로 죽은 이의 극락왕생과 중생들의 수명장수와 안락을 도와주는 부처님인데 신륵사가 과거 영릉의 기능을 가진 전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극락보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은 다른 절에서는 보기 힘든 흰 대리석이라는 특이한 재료를 사용한 석탑입니다. 지금은 탑의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정확한 층수를 알 수 없어 다층석탑이라 부르나 봅니다.

 

 

탑의 아래 부분에 새겨진 용과 구름 문양의 세부 조각이 대리석의 무늬 때문인지 더 특이하게 보입니다.

 


관광객들이 많지 않은 지금은 조용하고 차분한 사찰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극락보전 뒤로 삼성각과 이어지는 길이 있네요.



이렇게 기와지붕만 보고 있으면 양반 고택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삼성각을 들렀다 극락보전 뒤에 있는 길로 발걸음을 옮기니 적묵당이 보이는 곳까지 왔습니다.


 

극락보전 서북쪽에 있는 '조사당(祖師堂)'은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 세 화상의 덕을 기리고 법력을 숭모하기 위한 영정을 모셔놓은 곳으로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올 여름에 만나는 상사화는 무리지어 핀 것보다는 이렇게 하나 혹은 몇몇이 모여 있는 정도네요.

 


조사당 앞에 있는 향나무도 수령이 꽤나 오래 됐다네요.



예전에 왔을 때는 적묵당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문이 단단히 잠겨 있습니다.



관음전은 가운데 문이 닫혀 있고 가장자리쪽의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네요.


 

신륵사 경내를 구경한 다음 다층전탑을 보기 위해 강가 쪽으로 걸어 갑니다.

 


바위가 든든한 기단이 되는 삼층석탑이 하나 있습니다.


 

'강월헌(江月軒)'이라 이름 붙은 이 정자는 신륵사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멋진 곳에 자리잡아서 인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남한강 상류쪽의 넓고 시원한 강줄기가 보입니다.



강 건너편에 큰 호텔이 생겼네요. 옛날에 왔을 때는 저 건너편에서 물놀이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배를 타는 곳 밖에 안 보이네요.


 

높이가 9.4m나 된다는 보물 제226호인 신륵사다층전탑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고려시대 전탑이라고 합니다. 전탑은 벽돌을 구워 쌓은 것인데, 이 벽돌로 된 탑이 있다는 의미로 신륵사를 예로부터 벽절(壁寺)라고 불리웠다고 합니다. 강 상류에 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절벽 아래 부분의 강물이 매우 거세어서 강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등대와 같은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합니다.

 

 

탑의 층수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형태상으로는 7층의 형식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 탑의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없지만 벽돌의 문양과 전체적인 형식으로 볼 때 고려시대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탑이 세워진 장소가 사찰 안이 아닌 별개의 장소에 있는 것은 신라 말부터 성행한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다층전탑의 북쪽에 있는 보물 제230호인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는 고려말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의 문도와 함께 대장경을 인출하고 대장각을 지어 봉안한 사실을 기록한 비문이라고 합니다.

 

 

이숭인이 지은 비문을 당시 직제학 권주가 쓴 것인데 깨어진 부분이 많아 판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고, 비를 세운 연대 역시 없어 정확한 시기를 밝힐 수 없으나 홍무 16년(1383년)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본래 신륵사에는 대장각이 극락보전 서쪽, 지금의 명부전이 있는 곳 근처에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는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고 이 비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구경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아까 입장할 때 지나쳤던 비석들을 봤는데 줄 맞춰 잘 세워져 있네요.....


 

신륵사는 다층전탑이 유명하지만 남한강과 어울리는 풍경도 멋진 곳이네요.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